" 정의란 무엇인가 독후감 "
일상 속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하기 까지. 필요를 원동력 삼아서 수차례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끝내 발전에 이르기 까지. 사고의 유익은 결과적 산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정답을 익히는 것보다 혹독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훈련은 고뇌하는 이의 사고에 근육을 붙여 더욱 단단한 뇌를 가지게 한다.
한국에서 자라는 학생들의 보편적인 사고는 어떠한가?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전에 학습목표가 주어지며, 생각의 원동력이 되는 '필요'는 풀어야 할 문제와는 무관하다. 그저 성적 줄 세우기에서 오는 경쟁심 혹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관심 없는 학습을 계속하는 것이다. 호기심은커녕 좋은 점수를 목표로 공부하는 한국 학생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과정이 아닌 결과이다. 누군가가 왜인지 모르게 조사하고 정리해 놓은 내용을 외우고, 어떤 필요에 의해서인지 모르게 만들어놓은 공식으로 빠르게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들. 그리고 이런 교육이 정상적인 것인지, 진정 학생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인지 의심하지 않는 이 과정을 이미 거쳐간 선배들 까지. 우리는 눈앞의 시험에 집중하느라 사고하기를 소홀히 하고 때때로는 생략하기도 한다.
사고의 부재는 분명 큰 문제를 야기하는데, 이는 어쩌면 무지가 불러일으키는 혼란보다 더 큰 분란을 만들 수 있다. 무지의 상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쉽고 배움을 시도하기 쉬운 상태이다. 하지만 사고의 과정 없이 지식을 가진 사람은 자만의 상태에 자신도 모르게 빠지고 만다. 어설픈 지식으로 무장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여 현실을 부정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결여시킨다.
(필자가 그러한 사람이었다.)
사고의 게으름은 교육적 측면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도 나타난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도덕을 배우는 보편적인 방식은 유교적 가치관의 일방적 주입이다. 보통은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을 통해 사회통념을 배우는 식이다. 이 가르침 중에는 학생의 도덕적 사고를 폐쇄하는 높은 벽과 같은 교훈이 존재하는데, "어른에게 말대답하거나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된다."는 식의 유교적 가치관이다. 이런 가르침은 기존의 도덕과 사회통념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판단과 비판 의지를 꺾어 학생의 사고를 게으르게 만든다. 더불어 도덕적 판단능력을 결핍시켜 사전에 차마 교육되지 못한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의 도덕과 사회성을 터득한 학생들은 도덕적 사고능력이 굳어버린 채로 성인이 되고 사회의 일원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개성과 다양성의 시대이다. 오랜 시간 굳어진 보편적인 가치관이 깨져가고, 어떤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나 별난 주장도 존중받는 세상이다. 나와 다른 생각이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이유를 묻지 않고도 존중이라는 말 한마디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정형화된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사고하는 요즘, 필자는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SNS를 통해 접하는 생각은 다양해서 서로 부딪히는 주장이 상당했다. 어떤 글을 읽는 순간에는 이 주장이 진실 혹은 정답으로 다가왔고 다른 글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에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또 다른 글이 마음에 들었다. 그 순간 사고능력의 결핍과 가치판단에 미숙한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했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갈증은 이내 필자를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으로 이끌었고, 하버드 대학교 교수 출신의 저자는 든든한 신뢰감을 주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유명한 '폭주하는 전차 딜레마' 같은 단순해 보이는 문제부터 세계 경제가 얽힌 복잡하고 거대한 사건을 사례로 정의에 대한 사고를 시작한다. 이어서 역사에 기록된 철학자들의 사상을 차례로 정리하며 사고의 비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류학적 철학 발달 과정을 소개한다. 필자는 저서가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을 다룰 때면 공리주의에 매료되어 감탄을 내뱉었고, 칸트를 읽을 때에는 이성적 존재에 대한 그의 주장에 감탄하며 공리주의를 함께 비판해 보았다. 역사상 가장 유려한 사고를 따라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은 필자로 하여금 스스로 가치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었고 그 과정은 놀이처럼 즐거웠다.
다양한 생각이 넘쳐나는 시대. 딱히 이유를 대지 않아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고의 자유를 얻은 지금. 우리는 과연 자유로이 자신의 가치관을 선택하고 있는가? 혹시 굳어버린 사고능력에 자포자기하고 다른 이의 생각과 가치관을 깊은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존 스튜어트 밀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인류의 최대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고가 결핍된 개인의 가치판단과 자유가 밀이 주장하는 인류의 최대 행복의 밑거름이 될지는 의문이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정한 개인의 사고를 해야 한다.
당신의 선택은 어쩌면 당신의 것이 아니며,
당신이 자유로이 선택한 신념은, 어쩌면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입된 사상일 수 있다.
* 제가 브런치에 쓴 글을 블로그를 통해 재배포하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난의 당위성 (0) | 2020.09.12 |
---|---|
인권 이라는 말의 유래와 발달 (0) | 2020.09.02 |
누구를 위한 비난인가? (0) | 2020.08.30 |
부장님의 비난 심리 (0) | 2020.08.30 |
위로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야 (0) | 2020.08.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