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비난인가?
누군가 로부터 비난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꼬집어 드러내는 일, 기분 나쁜 어투로 깎아내리는 말은 누가 들어도 전혀 유쾌하지가 않다.
그래서 비난을 듣는 사람 중 더러는 상처를 받기도하고, 비난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기도 한다.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무너뜨리는 비난.
이 부정적인 문화는 우리 삶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비난 문화는 우리 일상에 어떤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비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다른 이를 헐뜯고 상처 주는 것일까?
비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은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남을 깎아내린다.
우리의 대화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비난이 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비난이 있고, 반면 듣는 이의 기분을 단숨에 뭉개어버리고 한 사람의 인격을 초라하게 만드는 악질적인 비난도 존재한다.
비난의 이유가 납득할 만한 것이고, 동시에 그 역할이 사회에 좋은 약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합리적인 비난을 먼저 살펴보자.
합리적인 비난은 그 이유가 합리적이고 납득이 되는 경우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범죄자를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정해진 규칙 속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법을 만들어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한다.
우리 일상 속 법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키는 최소한의 규칙으로써,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를 유지시켜준다.
하지만 그 평화는 완벽하고 무결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따금씩 법을 어기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게 그들을 비난한다. 범죄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이미지와 입지를 무너뜨리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이유를 한 가지 더 만드는 것이다.
나라에서 집행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뿐만 아니라 범죄자를 비난하는 ‘낙인’또한 범죄의 발생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범죄 전과가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로 “주민등록증에 빨간줄이 그인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 대부분은 전과범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금전적 무리를 감수하고 합의를 하기도한다.
물론 낙인이론에 대한 다른 의견들도 있지만 찬반을 떠나서 범죄자에 대한 대중의 비난과 선입견은 다른 범죄 예방에 분명 도움이 된다.
더불어 범죄자에 대한 비난이 가져오는 유익을 배제하더라도, 사회 규범을 어긴 사람에게 범죄 행동에 대한 비난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해 보인다.
물론 비난의 정도를 따져 보아야 더욱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긍정적인 비난을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의 행동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비난을 요청한 경우나 상대방의 유익과 발전을 기대하는 조심스러운 비난은 듣는 이에게 좋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그 학생의 부족한 점이나 개선해야할 부분을 제시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충고라고 부른다.
20년 넘게 바이올린을 연주해온 선생님의 눈에 학생은 분명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 학생의 연주를 들으며 답답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어떤 작업을 하는데 있어 좋은 충고를 들었다고 해서 몸에 익은 대로 해오던 방식이나 세밀한 부분을 바로 수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충고를 하는 사람은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자신의 충고에도 마음같이 바뀌지 않는 제자에게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감정이 실린 충고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한다면, 듣는 학생의 입장에서 그것은 더 이상 충고가 아닌 비난이 될 수 있다.
그 대화의 목적은 충고가 아니라 선생님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대화상대, 같은 내용으로 말하는 중에도 충고가 비난으로 쉽게 바뀔 수 있다.
충고와 비난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살펴 보아야 하는데, 우선 듣는 이의 입장을 파악해야한다.
듣는 이가 대화의 내용을 납득하고 인정한다면 그 대화는 충고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듣는 이가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고 더 이상의 대화 의지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듣는 이의 입장에서 비난인 것이다.
충고와 비난을 구분하는 두 번째 기준은 말하는 사람의 목적이다.
듣는 이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바라며 말하는 대화는 충고이다.
말하는 사람이 좋은 의도로 상대방의 결점을 이야기한다면, 분명 그 의도에 맞게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언어로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듣는 이는 그 의도와 조심스러움을 쉽게 파악하고 상대방이 건네는 말을 충고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충고로 불리는 대화의 결과는 비난하는 대화를 나누었을 때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충고로 불리는 대화는 그 의도가 긍정적일수록 젠틀한 언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비난의 경우에는 그 과정에서 감정적 소모가 일어나며 결과 또한 좋지 못하다.
충고와 비난 사이의 대화를 나눌 때 몇 가지 예외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듣는 이가 성숙하지 못한 경우이다.
말하는 이가 좋은 의도로 상대방을 지적하며 건전한 대화를 건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이야기에 짜증을 내는 사춘기 아이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개중에는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다른 이의 부드러운 충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난으로 여겨 화를 내는 일도 있는데, 이는 듣는 이가 성숙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일이며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충고를 비난으로 받는 이들에게 계속적인 충고를 해줄 사람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광활한 세계를 살아가며 다양한 시각이 전해주는 충고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은 성장이 더딜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스스로의 성장속도를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관계형성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와 같이 미성숙으로 인해 충고가 비난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예외로 구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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